2013. 2. 13. 09:00ㆍ핀테크👓Business
인터넷이 없는 세상을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까?
저는 80년대생이지만 비교적 일찍 컴퓨터를 접해서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 세대중 한명입니다. 처음 사용해본 컴퓨터가 당시에는 한국에 몇대 없던 Apple II 컴퓨터로 베이직을 OS로 사용하던 시절이 있었죠 ^^ 제 나이 초등학교를 들어가기도 훨씬 전입니다.
그러던 중 90년대에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사람들이 컴퓨터를 사용하는 방법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그 이후로는 컴퓨터에서 PC통신이나 인터넷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사실상 컴퓨터를 90%도 활용하지 못하는 것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으니까요. 인터넷이란 그 만큼의 파급력있는 발명이었고, 지금 우리는 유비쿼티((Ubiquitous) 환경 속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인터넷이 없는 세상은 더 이상 상상하기 조차 힘든 지경이 되어버렸습니다.
스마트폰 하나를 구입해 놓고, 데이터플랜과 와이파이 연결이 되지 않는다면 무엇 하나 마땅히 할 것이 없는 것을 경험해 보신 분들이라면... 아마도 인터넷이 공기나 물처럼 필수 자원으로 승격된 것은 아닌가 착각에 빠지기도 합니다 ^^.
> 6개월동안, 가장 인터넷이 필요한 직업을 가진 사람의 인터넷 금단 일기
달콤한 로그아웃, 인터넷은 우리를 어떻게 바보로 만드는가
그러던 중, '달콤한 로그아웃'이라는 책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반년동안 (6개월동안) 독일의 한 문예부 기자가 인터넷이 없는 삶을 지속할 경우 어떤 심리적 변화가 오는지 실험정신에 입각하여 쓰여진 일기(Journal)입니다.
소셜미디어를 그다지 잘 활용하지 못하는 저조차도 하루 평균 2~3개의 업무 이메일을 받는데, 저자 알렉스 륄레는 하루에 평균 60~80통의 비즈니스 메일을 받는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그런 저자가 6개월동안 인터넷 금단을 결심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그의 일지를 읽으면서 저의 경험과 일치되는 부분을 찾아내는 즐거움이 있었고, (군입대를 하면 최소 2~3개월은 인터넷을 하지 못하지 않는가? ㅎㅎ) 덕분에 인터넷이 삶을 얼마나 크게 바꿔놓았는지, 인터넷을 하지 않고 책을 읽으며 사색을 하면 무엇을 얻게 되는지 간접적으로 알게 되는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지성(知性)을 자극하는 문구들을 갈무리해서 정리해봅니다 :
오늘은 아주 평범한 하루였다. 총 68개의 메일을 받았고, 45개의 메일을 보냈다. (...) 이제부터는 어떻게 되는 거지? 내 삶은 아날로그 시대의 결핍 상태로 들어가는 건가?
인터넷이 된다면 당장 알아봤겠지만, 지금 내가 알 수 있는 방법이라고는 도서관을 찾아가거나 아버지에게 전화하는 수 밖에 없다. 그런데 도서관은 1996년도에 대학을 졸업한 이후로, 정확히 말하자면 Google이 생긴 이후로 한번도 가본적이 없는 것 같다. 아니, 잠깐만... 생각해보니 백과사전이 있었지. 지금은 창고 어딘가에서 다른 잡동사니들과 뒹굴고 있겠지만...
지금 내 앞에는 컴퓨터 화면이 놓여 있다. 어제까지만 해도 나는 언제든지 이 화면 넘어 영화처럼 화려하게 펼쳐지는 끝없이 넓은 세상으로 들어가 그 안에서 헤엄치고, 에너지를 충전하며, 숨통을 틔울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내 앞에 놓인 것은 단지 나를 향해 미소짓는 하얀 백지에 불과하다. 그 너머 어디로도 헤엄쳐 갈 수 없는 종이 한 장 말이다.
나는 고맙다는 인사로 말끝을 흐리며 수화기를 놓았다. 그리고 다시 한번 시도했다. 결국에는 찾지 못했다. (...) 고객 서비스팀 여직원은 그 출판사의 주소를 단 몇 초 만에 찾아냈다. 나는 전화를 끊기 전에 여직원에게 서비스팀과 뭐가 다르기에 이렇게 빨리 주소를 찾을 수 있었냐고 물엇다. 그러자 여직원이 대답했다. "저희는 구글을 쓰거든요."
아 참. 너 지금 인터넷 안하지?
친한 블로거인 한 여성은 자신의 블로그가 괴물 먹성을 가진 아이 같다고 말한다. "먹여도 먹여도 끝이 없어요. 이 짓은 매일같이 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잖아요"
소로가 쓴 '월든_Walden'이라는 책에는 그가 당시 2년동안 숲 속에서 보낸 생활이 담겨있다. 그는 거기서 삶에 꼭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의식하면서 살기 위해, 나를 일깨워 주려는 것들을 내가 미처 배우지 못했던 것은 아닌지 알아보기 위해, 그리고 먼 훗날 눈을 감으며 내가 인생을 제대로 산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후회하지 않기 위해 시작했다고 말했다 (...) 그는 살림도구 몇가지를 싣고 그의 방 한칸짜리 오두막으로 들어갔다. 당시 그가 가지고 들어간 살림살이는 많지 않았다. (...) 그리고 의자 세 개가 전부였다. 의자가 세 개인 이유에 대해 소로는 "첫번째 의자는 고독을 위한 것이고, 두번째 의자는 우정을 위한 것이고, 세 번째 의자는 사람들과의 사귐을 위한 것이었다" 라고 말했다.
안드리안은 온라인에서 자신의 블로그를 꾸미고, 온라인 당담자인 베른트는 종일 인터넷 세상을 헤엄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보온병 하나를 옆에 끼고 그냥 지나칠 수 밖에 없었다 (...) 인간은 모순되고, 충동적이며, 이랬다 저랬다 한다. 적어도 나는 그런 인간이다.
이런 실험을 하다보면 참 기이한 일을 만난기도 한다. 어제 한 여성이 나에게 전화를 걸어 내 실험을 훌륭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덕분에 자신의 세계관이 확장되었다며 "당신은 색과 사물들, 그 모든 것을 더 분명하게 보고 듣게 될 수 있을 거예요." 라고 덧붙였다.
인터넷 설치가 되어 있는 컴퓨터로 작업하면서 좋은 글을 쓸 수 있으리라고는 믿지 않는다
심리학자들은 이것을 주관적 시간 패러독스(Time Paradox)라고 한다. 시간은 각자의 기억속에서 각기 다르게 돌아간다는 것이다. 시간을 집중적으로 경험할수록 길다고 느껴진다. 길고 지루하게 느꼈던 시간은 기억 속에서 작은 점이 되어 버리고, 짧게 느껴졌던 시간은 반대로 기억 속에서 커다란 공간을 차지하곤 한다.
전에는 몇 시간이고 텔레비전 앞에서 자리를 잡고 앉아 수십 가지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자기 안으로 쑤셔넣는 사람들을 보면 한심하다고 생각했다. 이들은 하루 종일 자기가 뭘 봤는지도 기억하지 목한다. 인터넷을 하느라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던 나 또한 별반 다를 바가 없다. 컴퓨터를 끄는 순간 그 안에서 보낸 시간이 허무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스카 글롯만(Shuka Glotman)은 사진작가다. 가을에 우리를 방문했을때 그는 매일 도시를 발로 뛰어다녔다. 저녁에 만나서 "오늘 하루는 어땠어?" 라고 물으면 그는 온갖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
이야기를 마친 글롯만이 나에게 "그런데 너는 오늘 하루 어땠어?"라고 물었다. "음, 내 하루가 어땠냐고? 인터넷 웹사이트 77군데를 서핑했고, 이메일 63통을 썼지. 모든 게 따분했어"
취리히에 있는 유럽 구글 센터는 일과 오락이 한곳에 어우러진 곳으로,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회사 어디서든 직원들은 한시도 손에서 노트북을 놓지 않으려는 듯 했다. 그들에게서 노트북을 떼어 놓기가 얼마나 힘들었으면, 층을 내려올 떄 쓰이는 봉에 누군가가 다음과 같은 경고장을 붙여 놓았을 정도다. "봉을 타고 내려오는 동안에는 노트북 사용 금지!"
내 머릿속 도시의 지도가 바뀌었다
그들은 오직 온라인에서만 지원을 받았다. 나는 온라인 외에 전통적인 아날로그 방식으로 지원할수는 없는지 알아보기 위해 함부르크에 전화를 걸었다. "매우 예외적인 경우에는 가능할 수도 있겠죠. 왜 그러시는데요?" 나는 그녀에게 내 실험에 대해 설명했다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알았어요. 그건 정말 예외적인 경우네요. 그러면 저희에게 우편으로 지원서를 보내주세요" 하지만 나는 그 말대로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지원서는 인터넷을 통해서만 다운로드 할 수 있게 되어 있는데요." 이럴 때면, 나는 내가 플라톤의 비유에 나오는 인간이 된 것만 같다.
열차 안에 탄 사람은 바깥의 사물이 얼마나 빠르게 지나가고 있는지 인지하는 능력이 떨어진다고 합니다. 우리는 인터넷이라는 열차에 탄채로 복합적인 테크놀로지에 노출이 되어 있기 때문에 세상이 얼마나 급속도로 빠르게 변했는지 미처 인지하지 못하고 넘어가는 부분이 많습니다. 이 책을 읽는 것은 마치 제 시각을 열차 바깥으로 이동시키는 간접적인 체험이었습니다.
문예부 출신 기자답게 문체의 표현이 매우 자유로워 마치 소설책과 같은 독일 문학 작품을 읽는 듯한 착각에 빠졌습니다. 책에는 다양한 문학작품들과 연구논문, 영화나 예술작품, 그리고 저널리스트의 글에서 빌린 묘사가 많은데... 이런 표현의 기법을 접하는 것도 뇌에 신선한 충격이더군요. 저자가 독일사람이기 때문에 간혹 우리나라 정서와는 안맞는 부분들도 있지만, 해외문학소설을 많이 읽어보신 분들이라면 크게 염려할 정도는 아닙니다.
이 책은 첫번째 읽을때에는 다소 가독성이 떨어지는 부분들이 보였습니다. 그렇지만 두 번 읽으면서 이전에 놓쳤던 저자의 사상을 캐치할 수 있었고, 비로서 저자가 남긴 위트들을 모두 이해할 수 있는 재미난 책이었습니다. 읽으면서 생각에 잠기는 것을 좋아하는 분들, 그리고 본인이 인터넷과 스마트폰 중독의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에게 추천해드리고 싶은 서적입니다.
* 만약 여러분이 오늘 당장 인터넷을 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카톡으로 채팅도 못하고, 출근하면서 인터넷 뉴스도 읽을 수 없고, Facebook에서 친구의 근황을 체크할 수도 없고, 업무는 마비가 될 것이고 주말에 영화관 예약할조차 할 수 없겠죠. 수강신청을 못해서 대학행정실을 찾아가야 할 것이고, 카페에 앉아서 연인들끼리 카톡 소셜 게임도 즐기지도 못할 것이고... 다만 얻는 것은 무엇일까요? 한번쯤 생각해보면 테크놀로지가 가져간 우리의 시간을 돌아보는 좋은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